도형심리 바이블 -정다혜지음- 참고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칼융은 목사의 아들로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의 확립을 도모했으나, 성욕설이나 무의식의 사고에 뜻을 달리해 독자적인 분석심리학을 창시하였다. 융은 자기 내면에 또 다른 인격인 무의식을 발견하고 그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탐구하게 되었다. 그는 바젤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1900년 취리히대학 부속 정신병원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였다.
이 시기에 융은 그의 심리학 사상에서 가장 결정적인 개념이 되는 '개성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1904년경 정신분석의 유효성을 제일 먼저 인식하고 연상 실험을 창시하여, S.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것을 입증하고 'complex'라 이름 붙였다. 그 후 그는 '리비도'라고 하는 개념을 성적이 아닌 일반적인 에너지라고 하였기 때문에 프로이트와 의견이 대립되어,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그 이후 자신의 심리학(분석심리학이라 일컬음)을 수립하는 데 노력하였다.
리비도
Libido
요약 정신분석학 용어로 성본능(性本能)·성충동(性衝動)의 뜻.
이 말은 보통 말하는 성욕, 다시 말해 성기(性器)와 성기의 접합을 바라는 욕망과는 다른, 넓은 개념이다. S.프로이트는 리비도가 사춘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발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본능은 구순기(口脣期)·항문기(肛門期)를 통해 발달하다가 5세경 절정에 이른 후, 억압을 받아 잠재기에 이르고, 사춘기에 다시 성욕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리비도는, 중도에서 발달이 중지되기도 하고[固着], 완전히 발달했다가 거꾸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退行]. 이상성욕이나 신경증(神經症)이 이에 속한다.
또한 리비도는 대상에 주입(注入)되어 축적되는데, 이러한 리비도를 대상(對象) 리비도라고 한다. 우정, 부자간의 정, 연애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자아(自我)에게 주입된 리비도를 자아 리비도 또는 나르시시즘적 리비도라 한다. 자기의 건강상태를 이상스러울 정도로 걱정하는 상태, 말하자면 심기증(心氣症) 같은 것이 그것이다.
리비도가 충족되기를 바라다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불안으로 변한다. 또한 리비도는 승화되어 정신활동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처음에 리비도를 자기보존 본능과 대립되는 것으로 보았으나, 나중에는 이 둘을 결합, 에로스(영원의 결합을 구하는 본능)라고 하여 죽음의 본능, 즉 삶을 파괴하려는 본능과 대립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리비도 [Libido] (두산백과)
그의 심리학은 신비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는데다 난해하였기 때문에, 심리학 일반에 대해서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으나 성격을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눈 것은 그의 큰 공적이다. 보편적적인 정신분석 도구인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MBTI)는 융의 이론에 근거해서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의식의 세 가지 수준
의식, 개인적 무의식, 집단적 무의식, 원형
대표적 원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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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조나(Per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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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Anima & Ani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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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Sh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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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Self)
정신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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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우리의 의식하는 감정, 생각, 기억,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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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집단 무의식(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유전되어 내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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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무의식(개인이 살아오면서 억압하거나 망각한 사고와 감정)
마음의 구조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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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존조나-외부로 보여지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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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식의 바로 뒷면에 있는 열등한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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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 아니무스-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와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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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통속적인 인간적인 영역을 뛰어넘게 하는 원초적 폭력
집단 무의식
융은 프로이트처럼 무의식을 강조하였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순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한 데 반해, 융은 무의식에는 '개인적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했다.
리비도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 개념을 넓혀서 리비도가 생물학적, 성적, 사회적, 문화적, 창조적인 모든 형태의 활동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전반적인 생명력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융의 리비도는 영적인 특질을 가진 창조적 생명력으로 개념화되었다.
콤플렉스
융에 의하면 콤플렉스는 특수한 종류의 감정으로 이루어진 무의식 속의의 관념 덩어리이다. 콤플렉스의 내용은 완전히 무의식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의식하다가 다시 의식하지 못하게 되는 상대적 무의식일 수도 있다. 콤플렉스의 존재는 언어연상 실험을 통해 발견되었다.
융은 일련의 단어들을 한 번에 하나씩 읽고 피실험자에게 마음에 떠오른 단어를 대답하도록 했을 때 가끔 피실험자가 반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을 주목하였다. 반응을 지연시킨 단어 간에 연관이 있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 사고, 감정, 기억의 연합체인 콤플렉스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콤플렉스에 관한 융의 연구결과는 콤플렉스가 퍼스낼리티 속의 별개의 작은 퍼스낼리티임을 암시한다. 콤플렉스는 자립적이며 그 자체의 추진력을 갖고 사고와 행동을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다.
원형
원형은 표상 불가능한 무의식적이고 선험적인 이미지를 의미한다. 융은 출산, 죽음, 권력, 마법, 영웅, 신, 악마, 대지, 거인, 나무, 태양, 달, 바람, 강 같은 무수히 많은 원형을 설명했다. 융은 원형에 대해 "인생의 전형적인 장면과 같은 수만큼 무수히 많은 원형이 있다. 무한한 반복에 의해 이 경험들은 정신적 소질 속에 새겨진다. 그것은 내용이 있는 이미지 형식이 아니라 처음에는 내용이 없는 형식이고 어떤 유형의 지각과 행동의 지각과 행동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라고 설명하였다.
형은 과거의 기억과 같은 완전한 심상이 아니다. 즉, 어머니의 원형은 어떤 어머니의 사진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형상되어야 하는 음화인 것이다. 따라서 잠재적 이미지는 현실 속의 부합되는 대상들과 동일시됨으로써 의식적 실재가 된다.
자아
자아는 의식이 개성화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개성화란 개인의 의식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의식의 시작이 곧 개성화의 시작이며, 의식이 증가하면 개성화도 증가하게 된다.
자아란 의식의 견해를 나타내므로 의식적인 지각, 기억, 사고, 감정이 자아를 이루게 된다.
이때 자아가 의식의 문지기 역할을 하므로 감각이든 관념이든 기억이든 자아에 의해 의식으로 인지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자아는 선택적이다. 무수히 많은 체험을 해도 대부분은 의식에 도닥하기 전에 자아에 의해 제거된다. 융은 자아가 의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부부분적으로 심적 기능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감정적 유형인 사람의 자아는 정서적 경험이 의식되는 것을 허용하기 쉽다. 의식화 여부는 부분적으로 그 경험이 자아에게 얼마만큼 불안을 일으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즉, 불안을 일으키는 경험은 의식되기가 어렵다. 융은 강하고 잘 구조화된 자아가 이상적인 발달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페르소나
페르소나는 자아의 가면으로 개인이 외부세계에 내보이는 이미지, 즉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내보이는 사회적 모습이다. 즉 사회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개인의 역할을 말한다. 그러므로 페르소나는 때로 음영에 대비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대비되기도 한다. 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페르소나가 발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페르소나에 의해 싫은 사람까지도 포용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융화할 수 있으므로 퍼스낼리티에서 페르소나는 유익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사회적 역할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자아가 오직 이 사회적 역할만 동일시하기 시작작하면 성격의 다른 측면들이 발하지 못한한다.
즉 자아가 페르소나와 지나치게 동일시되면 자신의 내면세계로부터 유리될 위험이 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융은 양육, 감정, 예술 및 자연과의 일치 등에 대한 역량은 여성적 원리이고 사고, 영웅적 주장, 자연의 정복은 남성적 원리로 간주하였다. 그는 인간이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을 모두 분비하므로 새생물학적 의미로 양성의 성질을 가지며, 심리적로 인간이 양성적 특질을 갖고 있으나 유전적인 성차와 사회화로 인해 남성에게선 여성적 측면이 여성에게선 남성적 측면이 억압되고 약화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무시된 측면들은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고 간주하였다.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남자의 여성적인 면은 아니마, 여자의 남성적인 면은 아니무스라고 명명되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꿈, 환상, 문학, 남녀의 상호작용, 신화 속에 나타나는 반대 성의 원형이다. 남성이 그의 여성적 본성을 억압하고 경멸하고 홀대할 때, 그는 자신의 창조력과 전체성으로부터 고립된다. 여성이 남성적 본성을 억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음영(그림자)
음영이란 의식의 이면으로 무시되고 도외시되는 마음의 측면이다. 음영은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크게 포함하고 있어 용납하기 어려운 특질과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하기 위해서는 음영에 포함된 동물적 본성을을 자제해야 하므로 페르소나를 발달시키게 된다. 그러나 음영은 동물적 본능의 근원일 뿐 아니라 자발성, 창의력, 통찰력 등 완전한 인간성에 필수적인 요소의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음영을 완전히 억압하면 창조성과 생명력 같은 본성을 희생시키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반면 자아와 음영이 조화를 이루면 그 사람은 생기와 활력에 넘치게 된다. 음영은 긍정적인 자기상과 반대되기 때문에 대부분은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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